ISD는 공정한 재판일까?

from economy 2007. 4. 6. 13:49

ISD를 중재로 보아야 하느냐 소송으로 보아야 하느냐의 문제에서 오히려 언론에서 소송으로 지칭하는데 더 큰 문제가 있고 이는 이 제도의 본질적인 부분을 가리는 효과가 있다고 생각한다.

 

ISD의 원류는 중세 상인법의 전통에서 나온 것으로 알고 있다. 물론 이것을 하나의 법체계로 볼 수 있느냐에서는 의문이 있는데 다만 볼 수 있다고 하면 이는 정식재판절차가 아닌 일종의 중재제도가 명확하다고 본다.

베스트팔렌조약으로 유럽에서 근대영토국가들이 출현함으로써 주권국가만이 국제법적으로 유일한 효력의 원천이 되었지만 각 주권국가간의 다른 법적용과 논리는 자본가들에게는 피곤하고 혼란스러운 일이 아닐 수없었다. 게다가 자본주의가 팽창하여 세계적인 차원으로 확대되면서 이런 불편함은 더욱 가중된다. 그래서 자본가들은 국제법에서 유일한 주권국가들을 배제하고 자신만의 새로운 분쟁해결절차는 만들기 위해서 1923년 제네바에 모이게 된다.

 

1. ISD의 역사적 배경

1923년에 국제상공회의소 주재로 제네바에서 민간분야의 분쟁해결을 위한 구속력있는 중재심판소(국가가 주관하는 재판소형식이 아닌) 설립하기로 한 후에 1969년 투자분쟁조정회의와 그 후에 세계은행산하의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를 만드는데 까지 왔다.

하지만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의 설립 전까지는 이 절차의 적용범위가 상업적이라는 단서가 붙어있었다. 세계대전 이전까지는 각국이 판매와 관세가 문제가 되었지만, 1960년대 이후 세계화는 생산기지의 세계화인데 이는 필연적으로 각국의 상업분야에만 국한되지 않는 사회의 각분야에서의 마찰을 동반하게 된다.

그래서 1965년에 ICSID를 설립하고 상업영역에만 국환되지 않도록 적용법위를 확대하는데 여기서부터 골때리게되는 상황이 벌어진다. 일개의 민간중재소가 국가와 동등한 위치에 서게되고, 마음대로 정부를 상대로 중재를 요구할 있게되며(반대는 물론 불가) 그 중재결정도 기속력과 구속력을 가지게 된다. 

 

하지만 여기서도 물론 각 주권국가들이 자신의 외국투자자들에게 우리는 ICSID의 절차와 중재효력을 인정한다고 선언을 해야 투자자들은 ISD의 절차를 사용할 수가 있었다. 그래서 1980년대 이전까지는 그렇게 활발히 적용되지 않는 제도였는데 국가입장에서는 이 제도를 인정하는 것이 자신에게는 불리했기 때문이다.

이후 세계화가 진전되면서 자본의 논리를 제일의 가치로 인정하는 이른바 “신헌정주의”가 팽배함으로써 국가적인 선언을 통해 인정되는 제도가 아닌 일괄적으로 투자협정을 체결하면 들어가게 되는 경향이 생겨나게 된다. 이것이 다자간투자협정(MAI)에서도 들어가게 된다. 물론 MAI는 이 제도 때문에 실패했지만 그 대안으로 나온 쌍무적 협상인 FTA로 그 자리를 옮기게 된 것이다.

세계화 이후의 ISD와 그 이전의 ISD는 질적으로 다른 제도이다. 그전에는 보충적인 제도에 상업적인 분야였지만, 이후에는 선택적인 제도(rule-shopping)에 비상업적 분야까지 포함하는 제도이기 때문이다. 다만 FTA는 다자간 협상이 아닌 쌍무적 협상이므로 양자가 합의를 해서 이 제도를 넣을지 말지를 결정할 수 있는 여지는 당연히 존재한다. 그러나 정부는 이 제도가 FTA를 하면 반드시 해야 하는 제도로 보고 있다.

 

 

2. ISD와 일반재판절차의 차이점

여하튼 이들의 기본적인 성격은 주권국가간의 공식적인 재판절차와는 다른 민간인들간의 중재라는 점이다.

 

 1. 판단기준이 재판처럼 실체적인 진실이나 공익적 목적 등을 고려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투자자의 (기대)이익을 침해했느냐의 여부이고 침해했다면 공공적 목적은 고려의 대상이 아닌 점이다.
그러므로 지금 협상처럼 적용분야를 아무리 제한해봐야 실제 사건의 발생은 국가의 공익적 목적이 원인이 될 것이고, 개별사건을 판단할 때에는 이런 국가의 공익적 목적이나 판단이 고려의 대상이 되지 않으므로 적용분야를 제외는 것은 통해 얻을 수 있는 효과는 아주 제한적이고, 부동산이나 조세분야를 제외한 모든 분야에서는 국가의 공익적 정책을 사용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2.중재의 기준이 되는 법률도 양당사자가 합의로 하고, 중재자도 합으로 선출할 수는 rule-shopping이 가능할 수 있다는 점.

3. 재판은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공판이 윈칙이지만 이 제도는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비공개가 원칙인 점.

4.재판장이 사건 당사자로부터 독립되어야 하는 것이 원칙이나, 이 제도는 중재자가 양 당사자로부터 수수료를 받는다는 점(독립적이지 않다는 점).

5.중재자가 다음에는 당사자의 대리인 또 그 다음에는 또 중재인으로 활약할 수 있는 점은 분면 소송과는 다른 점.

6.그 명칭도 재판관이 아닌 중재자(arbitrator) 그리고 그 심판소도 arbitration tribunal로 되어있다. 그리고 양 당사자 이외에 그 중재의 영향을 받는 제 3자 즉 이해관계인의 참여도 아주 제한적으로(양자가 동의해야) 이루어 지고 그들의 의견을 들을 수는 있어도 그들의 의견을 반영할 의무는 당연히 없다. 왜? 기본적으로 재판이 아닌 양 당사자간의 중재이므로…

 

3. “소송”이라는 이름의 이데올로기 효과

ISD가 지금 문제되는 것은 그 본질적 성격이 상업적인 판단에 기초하고, 또 그 판단절차나 적용기준이 공정한 재판절차와는 분명 다름에도 불고하고 소송이라는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마치 이 ISD라는 제도가 국제적으로 공정한 절차에 의해 진행되고 공공의 이익이나 실체적 진실을 기준으로 판단할 것이라고 생각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이를 근거로 정부는 이 절차를 통해 우리 투자자도 미국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고  말한다. 그러니 공평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맞는 말이다. 투자자라면 누구나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우리의 입장을 관철시킬 수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다.

 
중재자(arbitrator)와 대리인이 판사가 아니라는 점이다. 어제 100분 토론에서 김종훈수석대표가 중국의 백두산호텔의 폐쇄를 들면서 중국법정과 국재중재심판소의 예를 들면서 “중국법정과 대한민국의 판사가 1명 포함된 곳 중 어느 곳이 더 유리한가?”라고 물었는데 이는 말이 안된다.

중재재판에 참여하는 중재자, 대리인은 모두 국제변호사들 그 중에서도 관련 분야의 전문가들로 한정이 되지, 국적을 지닌 판사가 들어가지 않는다. 판사라는 말은 정부가 이 제도를 국민들이 일반적으로 인식하는 공판을 연상토록 하는 효과가 있다.

즉 국제변호사들이 참여하게 되는데 능력이 되는 수는 얼마 되지 않는다고 한다. 즉 그 바닥에서 누가 누구인지 뻔히 아는 구조이다. 자신의 다음 고객이 될 확률이 큰 것이 미국계 다국적 기업이다. 다음 중재에 대리인이나 중재자로 활약하기 위해서는 분명 다른 행동이 요구된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다국적기업을 보유하고 그 영향력이 세계 최고인 미국과 다른 칠레나 싱가포르를 비교해서 이 제도의 안정성(?)을 논의하는 것은 의미가 없을 듯하다.

[글로벌 법률산업 빅뱅]세계시장 게임 룰은 ‘미국법’ 이라는 동아일보 기사를 보면 얼마나 세계법률시장에서 미국계 로펌의 영향력이 강한지를 알 수 있다. 동아일보는 이 기사를 한미FTA 찬성의 논거로 이야기 하지만 최소한 ISD관련을 해서는 게임의 룰이 분명 미국과 미국계기업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하다는 점을 반증해서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나무 2007.07.04 17:17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FTA 반대 카페로 글 퍼갑니다.좋은 글 감사~

  2. scscs 2021.03.31 15:27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관리자의 승인을 기다리고 있는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