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태엽 오렌지10점
강호순 사건이 일어나면서 인간의 본성이란 무엇인가 하는 생각에 불현듯 읽게된 세계고전명작 시리즈 중 하나이다.

전체적인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알렉스라는 소년이 또래 아이들과 폭력/강도/강간 등 온갗 악(惡)한 일을 하다가 또래 아이들의 꾀임에 빠져 혼자 교도소를 들어간다. 거기서 정부의 새롭고 혁신적인 교화프로그램인 "루드비코 프로그램"의 제 1호 실험자가 되면서 나쁜 생각이나 분노를 하게 되면 조건반사적으로 몸에 통증을 얻게 되면서 사회에서 출소 후에는 자신의 감정을 스스로 통제하지 못하고 무조건 인내하면서 살아가는 알렉스의 이야기이다. 나중에 알렉스는 스스로의 의지로 어느 순간 탈선이라는 행동에 흥미를 잃어버리고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하기로 하면서 이 소설은 끝은 맺는다.

역시나 이 소설에서 가장 핵심적인 주제는 "인간이 선한 것은 선함 그 자체가 아니라 선이든 악이든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자유의지를 가지므로 선하다"이다. 자유의지를 박탈하는 루드비코 프로그램은 인간을 마치 누군가가 시계태옆을 감아야 움직이는 인형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나도 이 책을 읽었을 때 저자의 이런 주장에 별 다른 의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책을 덮고 곧바로 강호순이 등장하는 뉴스를 보면 난 다시 혼란스러워 진다. 나는 연쇄살인범이나 상습성범죄범에 대한 사회적 격리 이외에도 화학적 거세나 약물 주입을 통한 교정프로그램의 도입을 찬성하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이 책이 쓰여진 60년대라는 시대적인 상황과 지금의 상황을 단순히 비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 당시는 국가에 대한 강한 반발과 개인의 자유를 강조하던 시기였지만 현재는 이런 측면보다도 싸이코패스 등 인간본성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를 가지게 하는 다양한 범죄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극단적으로 요즘 문제가 되는 싸이코패스형의 연쇄살인자들에게 과연 자유의지라는 것이 있는가 하는 의문이 든다. 이들의 인터뷰를 들어보면 하나같이 자신의 살인(범죄)본능을 제어하거나 선택할 수 없었다는 이야기를 한다.
 
이 책에서 주장하는 "선택할 수 있는 의지를 가지는 것이 바로 인간이다"라는 명제로 본다면 강호순 등의 싸이코패스 연쇄살인자들은 더 이상 인간이 아니게 되는 아이러니가 발생할 수 있다. "선택할 수 있는 의지"를 가진다는 것은 최소한의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책 속의 알렉스나 현실에서의 유영철이나 강호순은 범죄 당시 일말의 양심의 가책을 느꼈을까? 선택을 해야 하는 그 고통을 느낄 수 있었을까?

또 다른 흥미로왔던 점은 이 책에서 정부가 루드비코 프로그램을 시행한 이유이다. 그것은 인간의 교화와는 거리가 애초부터 멀었다. 오히려 제한된 예산과 교도시설때문에 주인공같은 흉악법을 사회로 내보내고 대신 정부에 반대하는 정치범/사상범들을 더 많이 수감하려는 목적에서 출발한다. 이 부분은 과거 영화 "살인의 추억"에서 보여주었던 전두환정권 시절에 데모진압때문에 일선 경찰과 형사들이 모두 서울로 올라간 틈에 화성연쇄살인이 발생했다는 내용과도 비슷하다. 또한 최근에 "강호순 사건"을 최대한 부각해 정치적으로 부담이 된 "용산참사"를 희석시키려 했던 무능하고 비도덕한 이번 정권과 루드비코 프로그램을 시행하는 책 속의 정부와는 놀랍도록 닮아있다.

그리고 이 소설 구성에서 좀 아쉬웠던 부분은 마지막에 주인공 알레스의 변화 부분이다. 루드비코 프로그램을 통해서도 꺾을 수 없었던 탈선을 어느 순간 알렉스는 흥미를 잃고 스스로 사회에 적응하려고 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어떻게 해서 이런 변화가 가능한 것인지 이 소설에서는 설명해 주지 않는다. 과거에는 자유의지를 가지지 못했던 알렉스가 어느 순간 자신의 삶을 선택할 수 있는 의지를 가진다면 이는 매우 중대한 변화임에도 말이다.
 
더구나 이 책에는 그 변화를 단순히 "철이 든다"라고 표현을 하고 있는데 순간 소설의 구성이 용두사미가 되는 느낌이었다. 애초에 이 소설의 주요 갈등은 선한 인간을 만들려고 인간을 통제하려는 그래서 악한 국가권력과 비록 악행을 하지만 자신의 행동을 선택할 수 있는 그래서 선한 개인사이의 대립이었다. 그런데 소설 마지막 부분에 가서는 철이 드는 것으로 설명을 함으로써 국가권력 대 철이 든 인간 사이의 대립으로 소설의 구도가 변화하고 이상해진다. 그렇다면 개인들이 철이 드는 것이 국가권력에 대항하는 방법이 되는 것인가하는 좀 엉뚱한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그래서일까. 이 결말을 보고 읽은 내용을 곱씹어 보면 이 소설이 인간의 본성에 관한 치열하고 깊이 있는 성찰이 있어보이진 않았다. 또한 성장소설인지 인간 본성을 주제로 한 소설인지도 헛갈린다. 개인을 통제하려는 국가권력의 어리석음을 제대로 조롱하는 것도 아니고 이에 대항해서 스스로 선택의 고통을 감내하고 (선행이든 악행이든) 선택을 할 수 있는 인간의 조건을 지키는 인간상(象)을 그려낸것도 아닌 듯하다. 어쩌면 이런 주제들을 모두 포괄하고 있지만 하나라도 제대로 건들지 못한 비유하자면 가짓수는 많지만 딱히 젓가락이 가는 메뉴는 없는 뷔페같은 느낌이랄까?
http://burbuk.tistory.com2009-02-20T09:16:120.3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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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mr-ok.com/tc BlogIcon okto 2009.07.24 01:05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저도 좀 혼란스럽기는 했지만 성격이 삐딱해서 그런가 소설의 난데없는 결말이 참 맘에 들더군요^^
    기회가 되신다면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영화도 감상해 보시길 추천합니다.